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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외솔 최현배 스승 가신지 50돌을 맞으며
등록일: 2020-03-05  |  조회수: 534

나는 연세 국문과 재학시절 부총장 외솔 최현배(1894년~1970년) 박사님, 총장 서리를 지낸 한결 김윤경(1894년~1969년) 박사님 두 교수님께 한글사랑, 나라사랑을 잘 배웠다. 연세대 오석두(五石頭)의 한 분으로 존경받는 두 스승은 연세교정 문과대학 외솔관 앞에 외솔 얼굴상, 노천강당 입구에 한결 얼굴상으로 인자하게 서 있다. 한결 선생은 지난해 2월 3일로 가신지 50돌이 지나갔고, 외솔 선생은 올해 경자년 3월 23일로 하늘나라 가신지 50돌을 맞게 된다. 외솔 선생에게 그분의 불후의 명저서 <우리말본>을 강의실에서 직접 배운 우리 국문과 동문들은 외솔 제자임이 어딜 가도 자랑스럽다.

외솔 선생은 1894년 10월 19일 경남 울산에서 최병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시고 상경하여 한성고등보통학교에 75명 모집 정원인데 1천2백 명이 응시한 가운데 16:1경쟁을 뚫고 당당히 수석 입학하였다. 1910년 4월에 입학했으나 8월에 학교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관립이 되고 그해 8월 29일 나라는 경술국치까지 당하여 최현배 학생은 비분강개하여 공부도 잘 안되고 슬픔 가운데 우울하게 지낼 때 내종형 박필주와 친구 김두봉의 소개로 우리 국어순화의 횃불 주시경 선생을 남대문 상동교회 조선어강습소에서 만나게 되어 일생의 목표가 우리말 우리글 우리얼 사랑으로 자리 잡게 된다. 특히 한글사랑은 목숨같이 생각했다. 조선어강습소 중등과 고등과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했다.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로 유학길에 올라 한문 교육학을 전공하고 일본 학교를 피하여 사립 동래고보에 한 2년 근무하며 <우리말본> 문법연구의 뼈대를 잡기 시작했다. 다시 교토제대 철학과에 진학하고 이어 대학원 재학 중에 1926년 동아일보에 <조선민족갱생의 도>를 연재하고 1930년에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일제는 판매금지 시켰다.

한글이란 이름을 남긴 한힌샘 주시경 선생은 안타깝게 1913년에 일찍 별세하셨으나 그 정신은 조선어학회로 제자들이 이어 갔다. 1926년 연희전문 문과 교수가 된 최현배 선생은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문법> 학문을 이어가며 한글날 제정,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사정한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조선어큰사전 판짜기 등 우리 말글로 조국 광복의 길을 닦아 나갔다. 외솔 선생은 일제가 조선어말살정책, 민족말살정책을 펴는 가운데 어느 음식점 방명록인 금서집(錦書集)에 <한글이 목숨>이라는 휘호를 남겼다. 이렇게 한글을 목숨으로 삼고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하는 최현배 민족주의자 선비에게 조선어학회사건이 다가왔다. 최현배 선생은 1942년 10월 1일 이극로, 연희출신 정인승과 함께 잡혀 홍원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고, 함흥감옥 3년의 지옥 같은 옥살이를 다 이겨가며 옥고 중에도 한글가로글씨, 한글풀어쓰기 등의 한글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임생각>, <공부>, <나날의 살이>등 9편의 옥중시조도 남겼다. 외솔 선생이 8년에 걸쳐 쓴 <나라사랑의 길> 저서 권두시로 <임생각> 4수 연시조를 실었다. 애국심을 일깨우는 시조가 아닐수 없다. 본인도 외솔 옥중시조 9수 중심의 평론을 통하여 그 미적 가치를 높이 분석했다.

일제시대 외솔 선생이 남긴 3대 저서에서 <조선민족 갱생의 도(1926)>는 먼저 우리 조선민족이 다시 살아갈 생기를 일깨워 주었으며, <우리 말본(1937)>은 우리 말과 글의 이치를 바로 갈고 닦은 우리나라 문법의 경전이 된다.  <한글갈(1940)>은 외솔 선생이 애국단체 흥업구락부산건에 연루되어 3년간의 실직 상태에서 연구한 저서로 우리 한글이 어떤 글인가를 잘 말해 준다. 외솔 선생은 광복 후 두 번의 문교부 편수국장직을 맡으며, 가로쓰기 한글교과서를 바로 펴내어 우리 국어교육의 반석같은 기초를 이루었다. 그리고 한글기계화에 앞장섰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세종의 업적을 크게 빛냈다. 그리고 국한혼용과 한글파동을 다 물리치고 승리했다. 외솔 선생은 일제시대 광화문 새문안교회 안수집사로 신앙생활도 착실히 하신 기독교 신앙인이었다.

1970년 3월 23일 새벽 3시 35분 세브란스병원 505병동에서 돌아가실 때 마지막 유언도 “한글을…”이 한마디였다. 외솔 최현배 박사 추모단체 외솔회는 애국자 인물중심의 <나라사랑>책을 1백27집까지 발행하고 외솔전집도 발행했다. 전통이 쌓인 외솔상도 42회가 시행되었다. 국어학계 외솔 선생 직계 연세 제자로 허웅 전 한글학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박창해, 문효근, 김석득, 남기심, 최기호, 성낙수, 서상교, 김슬옹 교수 등이 있다. 일제시대 시인제자로 순국시인 윤동주가 있다.

해마다 외솔 출생 고장인 울산시에서는 외솔탄생 한글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태하강변에서 크게 열고 있다. 외솔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 진접면 장현리(현 남양주시 진접읍)에 모셨다가 2009년 7월 23일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백44번 자리에 옮겨 모셨다. 애국지사 한글학자 교육자로 77세 한평생 나라사랑하신 겨레의 스승, 외솔 스승님을 다시 뵙고만 싶다.

글·오동춘(국문 58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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