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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아, 연세 - 미디어에 비친 교정 (11) <1987>
등록일: 2019-06-04  |  조회수: 144

그날 이후 6월이면 마음이 먼저 그를 찾았습니다.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이한열(경영학과 86학번). 그날, 그가 쓰러진 학교 정문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포연에 휩싸인 세상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7년에 개봉된 영화 <1987>은 그 순간을 생생하게 재연해냈습니다.
경영학과 티셔츠를 입은 이한열 동문(강동원)은 “사천만이 단결했다. 살인정권 타도하자. 박종철을 살려내라”고 외쳤습니다. 발사 원칙을 무시한 최루탄은 그의 뒷머리를 강타했고, 그는 쓰러졌습니다. 초여름 오후의 햇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없이 가라앉았습니다. 6월 9일 쓰러진 이동문은 7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날, 시청 앞 노제에 모인 1백만 명의 시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한없이 울었습니다.
영화 <1987>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에서 시작하여 7월 9일 시청에서 끝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죄가 되던 암흑의 시절, 그 여섯 달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는 이한열 동문과 함께 또 한 사람의 동문인 윤상삼(신문방송학과 75학번/이희준) 동아일보 기자가 등장합니다. 
윤 동문은 고문치사사건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사인을 제일 먼저 알린 기자였을 뿐만 아니라 이한열 동문이 쓰러진 순간부터 장례식까지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 기자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그는 1999년 4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자취는 노천극장 대리석 계단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언론홍보영상학부 동문회는 윤동문의 정신을 기리는 ‘윤상삼 기자상’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날의 모든 것을 정문은 알고 있겠지요? 누가, 어떻게, 그런 비극적인 일을 저질렀는지 말입니다. 그 정문이 세워진 것은 1973년입니다. 원래 학교는 별도의 출입문이 없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그 후 신촌 일대의 도시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학교도 정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1969년 백양로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로 정비되면서 정문 및 담장 공사에 대한 계획이 수립되었고, 시간이 좀 걸렸지만, 1973년 3월 정문은 완성되었습니다. 그해 9월 봉헌식을 가진 정문은 2015년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에서도 모습을 달리하지 않았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는 정문은 진리는 그렇게 변함없어야 함을, 그것이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임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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