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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세상을 바꾸는 연세인들⑱ -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등록일: 2022-11-10  |  조회수: 1,405

“장애인의 삶을 보듬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세상 사람 1백명 중 아흔아홉은 좋은 분들이더라고요.”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그래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세상사는 결국 옳은 길, 진리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거 같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란 우리 학교 교훈처럼 우리가 의지적으로 그 길을 선택할 때 우리 자신도 자유로워지는 거 같아요.”
푸르메재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을 통한 사회 통합에도 힘쓴다.
백경학 이사는 우리 학교 사학과(83입)를 나왔다. 그의 외동딸도 우리 동문(영문 12입)이다. 푸르메재단은 백 이사의 아내가 가족여행 중 겪은 교통사고와 이 불행을 딛고 일어선 그의 의지 덕에 출범했다.

백 이사는 기자 출신이다. CBS·한겨레·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기자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동아일보를 구독했는데 동아 편집국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의 칼럼을 애독했다고 한다. 고교 땐 교내신문 기자를 했고 우리 학교 재학 시절에도 계간 ‘연세’ 지 기자를 했다. 글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기자 시절 그는 동서독 통일에 대한 연구를 위해 독일 뮌헨대 정치연구소에서 2년여 동안 연수를 했다. 연수를 마치고 떠난 가족여행 길에 스코틀랜드에서 사고로 그의 아내가 한쪽 다리를 잃었다. 영국 의사는 24시간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혼수상태에 있던 1백일간 세 번 수술을 받았다.
“전담 주치의가 있었고, 3교대 하는 여섯 명의 간호사가 24시간 가족처럼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우연히 그 병원을 찾은 외국인 교통사고 환자에게 쏟는 의료진의 열정에 감동해 나중에 푸르메재단을 만들고 어린이재활병원을 세웠죠.”
노무현 정부 출범 후 5개 권역별로 성인재활병원이 생겨 어린이재활병원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의 아내는 8년을 끈 소송 끝에 받은 피해보상금의 절반인 10억 원을 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내놓았다. 이 돈이 마중물이 돼 2005년 푸르메재단이 설립됐고 2016년 마침내 서울 상암동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들어섰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어린 재활 환자의 부름에 응답하고 이들을 인격체로 대하는 아름다운 병원이다. 시민 1만 명과 넥슨 등 약 5백 개의 기업이 기부에 참여했다. 그는 신문사를 그만둔 후 수제 맥주 가게 옥토버훼스트를 차려 재단 출연금의 일부를 마련했다.

그 후 어린이재활병원이 더 생겼나요?
“아직은 유일합니다. 대전에 짓는 병원이 내년에 개원하고 몇 년 안에 창원·광주에 순차적으로 지어질 거예요.”

여전히 적자인가요?
“코로나19로 연간 적자가 25억~27억 원에서 50여억 원으로, 두 배 규모로 늘어났습니다. 저항력이 약한 장애아의 감염을 우려해 부모들이 재활치료를 꺼리기 때문이죠. 감가상각에 대비해 쌓아둔 충당금으로 올해 말까지는 버틸 수 있을 듯하고, 어린이 재활환자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죠. 사실 적자 때문에 대형 병원들도 어린이재활병원을 만들지 않습니다.”

통합형 재활병원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원스톱으로 재활의학과·소아과·치과·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 내내 매달려 있어야 하는 부모도 아이가 물리·작업·음악 치료 등을 받는 동안 치과 치료나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죠.”
푸르메는 푸른 산이라는 뜻이다. 정호승 시인은 “대한민국 장애인들이 보통 사람처럼 찾아갈 수 있는 산”이라고 읊었다.
백 이사는 독일 연수 시절 유학 중인 한국인 신부·수녀들과 맥줏집에서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회사에서 기본급을 받는 데다 장학금을 넉넉히 받은 덕에 맥줏값은 그가 주로 냈다. 신부가 줄 게 없다며 그에게 영세를 줬다. 그의 아내는 가톨릭 모태신앙으로 세례명이 테레사였다. 아내가 영국에서 사경을 헤맬 때 그가 독일의 본당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소식을 전했다. 신부는 유럽 전역의 한인 성당에 테레사의 회생을 위한 미사를 부탁했다. 수천 명의 가톨릭 한인 공동체가 그녀의 회생을 간구하는 중보의 화살기도를 드렸고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그 기도가 이뤄졌다고 저는 믿습니다.”
만일 ‘백경학의 인생사용설명서’ 같은 게 있다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늘 지금 마주한 사람을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하려 합니다. 신에게 열심히 기도하느니 옆 사람 손을 잡아주는 게 나아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죠.”
그가 우리 학교에 다닌 1980년대 전반은 군부 정권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반정부 시위를 했다고 구속당하는가 하면 강제징집을 당하기도 했다. 같이 입학한 사학과 남학생 27명 중 그를 포함해 다섯 명만 졸업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추석날도 학교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었다. 야학에서 작은 공장에 다니던 또래의 청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힘들 때면 청송대를 찾았다. 지금은 없는 청송대의 돌기둥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옛날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나요?
“여행을 많이 다니고 더 폭넓은 독서를 하겠습니다. 제 아내는 사회학도 출신인데 천문학·물리학 등 자연 과학서를 즐겨 읽어요.”
그는 장애인 가운데서도 장애 어린이 재활의 확대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장애의 90%가 후천적 장애이고 만 한 살 이전에 생긴다. 그가 민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활센터 시절 엄마와 찾아온 첫 환자 민이는 네 살이었는데 의료진과 눈도 못 맞추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1년째 치료받던 어느 날 민이 엄마가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이라며 울면서 전화 했다.
“우리 민이가 걸어요!” 백 이사가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민이가 걷는대!”
직원들은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장애인이 별 어려움이 없어 행복해하면 우리 사회도 행복해집니다. 몸으로 하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를 해 보십시오. 저희 치과에 와서 중증 장애인을 안내하고 유니체어에 눕혀 드리는 봉사를 해 보신 분은 자신의 건강과 형편에 만족해합니다. 소액 기부든, 유산 기부든 기부도 해 보세요.”

관계 당국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를 확대하고, 저희 푸르메재단 같은 지정기부금 단체에 대한 기부금도 법정기부금 단체 수준으로 세액 공제를 늘려야 해요. 투명하게 운영되는 재활병원에서 치료받는 어린이 중증장애인의 경우 재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를 높여야 합니다.”

이필재(신방 77입) 한국잡지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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