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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세상을 바꾸는 연세인들 ⑮ - 오은영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1)
등록일: 2022-06-07  |  조회수: 2,121

“우리 안에 억울함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원인도 참 다양해요. 그런데 이 억울함은 열심히 산 사람이 더 많이 느낍니다.”
오은영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은 정신과 의사로서 억울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람들 대부분 열심히 살거든요.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는데 입시를 치르고 나면 억울한 마음이 들죠.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가장 잘 지킨 자영업자들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억울함이 뿌리인 분노의 감정이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고 다시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전사회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육아 대통령’ 소리를 듣는 오 원장은 우리 학교 의과대 출신이다(의학 85입). 소아청소년정신과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명함엔 저술가라고도 적혀 있다. ‘못 참는 아이 욱 하는 부모’, ‘오은영의 화해’ 등 그동안 16권의 책을 냈다.
피부과 전문의인 남편과는 우리 학교 의대 동기이다. 그는 그 바쁜 의대생이 동기와 연애결혼해 아들을 하나 낳았고 남편과 친구처럼 잘살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출신으로서 나름의 자부심이 있습니까?
“연세인이라는 걸 늘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초중고대 중 가장 많은 영향을 줬고, 연대 캠퍼스는 저의 황금기를 보낸 곳이죠.”

왜 연대에 진학했나요?
“우선 여자를 키우는 학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부모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저도 모태 신앙인인데 기독교의 세례를 받아 사랑을 실천하고 봉사도 하고 싶었어요. 입학실 날부터 1자로 뻗은 백양로가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는 대학을 선택할 때 주변에서 왜 국립대에 가지 않느냐고 했지만 당당하게 나는 연대에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학교 안팎 추억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사발 같은 큰 그릇에 담긴 커피를 빵과 함께 주던 독수리다방입니다. 돈이 없던 그 시절 친구와 나눠먹고는 했죠. 개구멍 같은 이화여대 쪽 굴다리,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던 그 동네 분식집, 학교 안에선 의대 도서관과 도서관 1층 휴게실이 추억의 장소인데 휴게실 국수가 맛있었습니다.”

왜 의대, 그것도 정신의학과를 선택하셨습니까?
“연대 의대엔 세브란스 정신이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 교실은 환자 인권을 중시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없애는 데 앞장서왔습니다. 이런 정신과 교실의 역사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의학도가 되려는 사람에게 우리 학교, 특히 정신과 진학을 권하시겠어요?
"연대 의대를 가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겁니다. 세브란스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오 원장은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시사교양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2013년엔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상을 탔다.

방송인으로서의 재능도 타고났습니까?
"학식과 경험을 갖추신 분도 있고 말 잘하고 친근한 분도 있지만 둘 다 갖춘 사람은 드문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재능이 조금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따로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이에겐 가장 중요한 사람인 그냥 부모일 뿐이죠. 아이가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도와 해결하도록, 아이를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신이 어떤 부모인지 성찰하고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건지 고민해야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내면도 키워줘야 돼요. 아이가 좀 크면, 의논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오 원장은 2008년 암 수술을 받았다. 회복이 빨라 2주 만에 진료실로 돌아왔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타인들에 대해 원망스러움을 느꼈다고 그가 털어놓았다.
“늘 그랬지만, 환자 및 가족들이 저한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게 많았어요. ‘진단서 써 주세요. 편지 써 주세요. 왜 안 낫는 거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하던 일인데 그땐 마음이 힘들었고 ‘이러니 내가 암에 걸렸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환자 보호자들이 손이 많이 가는 반찬과 배즙을 만들어 오고, 제가 좋아한다고 기장미역을 가져오시는 거예요. 한 자폐아의 엄마는 저를 안아주면서 ‘얼른 나으라’고 하셨죠. 보통은 제가 안아 드렸는데. 저는 그때 하나님이 제게 역사하셨다고 받아들입니다.”
암 투병은 그의 인생에 변곡점이 됐다. 과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하던 시절 아이의 문제점을 고쳐주려 했다면 요즘은 아이를, 증상이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 전인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단적으로 의사가 아무래도 증상에 초점을 맞춘다면 환자와 보호자는 약의 부작용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오은영의 버킷리스트’ 유튜브 채널도 시작했다.
“투병할 때 얼마 못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추스르고 나니 해보고 싶은 게 많더라고요.”
그는 잘해야 한다는 비장함과 부담감 없이 편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잘 못하면 어때요? 직접 해봤다는 경험 그 자체가 소소한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도한 버킷리스트를 소개해 주시죠.
“7시간 연습해 시도하는 ‘백조의 호수’ 1분 공연, 차차차 댄스, 강아지 훈련, 요리·빵·노래에 대한 도전 등입니다. 강아지 훈련을 시키다 엎어졌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그가 “(연식이 좀 된) 오 박사님도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저도 해 봐야겠어요” 같은 구독자 댓글도 달린다고 귀띔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그는 보통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귀가한다.

워커홀릭이시군요?
“아닙니다. 워커홀릭은 일을 안 하면 불안한 사람들이에요. 지금 하는 일들은 제가 좋아서 합니다.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하고 싶은 일들이에요. 다행히 그 좋은 일이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일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저는 쉬는 것도 너무 좋아합니다. 쉴 땐 그야말로 늘어지게 쉬기도 해요.”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습니까?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언제나 꿈을 꾸라고 하고 싶습니다. 직업은 꿈이 아니에요. 직업적으로는 발전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건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자기 파악을 해야 합니다. 아침잠이 많으면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을 고르지 말아야죠. 이건 게으르고 게으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또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은 피해야죠.”
그 길에서 밟아야 하는 과정, 치러야 하는 비용은 기꺼이 감수하라고 그는 말했다.
“저의 경우 의대 6년보다 인턴·레지던트 5년이 더 힘들었어요. 누가 다시 하라고 하면 싫다고 할 거 같아요. 그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 제 역할을 해내는 겁니다.”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개만 꼽아 주시죠.
“첫째, 화 안 내는 사람.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이 함께 있으면 안정이 된다고 해요. 둘째, 굉장히 씩씩합니다. 뭘 하든 열심히 하고 잘 안 지치죠. 셋째, 밥 잘 사주는 사람. 친구, 동료, 후배들에게 밥을 잘 삽니다.”

밥을 사면 약발이 있습니까?
“그럼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정도 들고 배가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죠. 그래서 밥을 삽니다.”

다음편에 계속

- 이필재(신방 77입) 한국잡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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