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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라 사랑을 실천한 연세인들
등록일: 2021-07-08  |  조회수: 5,068

독립운동가 김필순
1878년 6월 태어난 김필순은 1908년 제중원의학교를 마치며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가 됐다. 의학전문학교 재학 중에 황성기독교청년회와 상동교회에서 구국운동을 펼쳤고,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며 자신의 집을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협의하는 곳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1907년에 신민회를 조직하여 해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적극 동참했으며,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힘썼다. 내몽골 치치하얼에 병원을 열고 독립군을 치료했으며, 수입 대부분을 독립군 군자금으로 기부했다. 이렇게 독립운동 후방 기지를 개척하던 중 1919년 일본인 조수가 주는 우유를 먹고 순국했다.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박서양
박서양은 1908년 제중원의학교를 1회로 졸업했다. 졸업 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간호원양성소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17년 만주로 망명하여 숭신학교를 설립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구세병원을 개업하여 이주동포 진료활동을 하며 독립운동군의 의료를 맡아왔다.
독립운동 단체였던 대한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군사령부에서 군의관을 맡기도 했다.
백정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천시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내 속에 있는 오백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우라’고 말했다. 의료, 교육활동과 독립운동 활동을 펼쳤던 박서양은 200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운동가 신창희  
백범 김구 선생의 손윗동서로 알려져있다. 제중원의학교 1회 졸업생이며, 애국단체인 신한청년당의 당원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국 요원으로 독립군의 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921년 일제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적십자회 상의원으로 활동했다. 후에 동몽골 지역으로 이주하여 군의로 활동했고, 조선인에 대한 구제를 위해 의연금모금활동과 환자들을 위한 진료 활동을 수행했다. 1926년 2월 무리한 진료 활동 중 폐렴으로 인해 4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이태준
이태준은 몽골국왕으로부터 제1급 국가훈장을 수여받은 한·몽 친선의 상징적 인물로 ‘몽골의 신의’로 불렸다.
제중원의학교 재학시절 안창호의 권유로 비밀청년단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구국운동을 펼쳤다. 105인 사건으로 몽골로 망명하여 동의의국을 개원했다.
근대적 의술을 베풀며 몽골사회에 신뢰를 쌓은 이태준은 신한청년단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고, 금괴운송에도 깊숙히 관여하는 등 비밀 항일활동에 큰 공적을 남겼다.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펼치던 그는 1921년 러시아군 내 친일세력에 피살당하고 만다. 정부는 1980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
해병대 통역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현봉학 동문은 마산 진동리전투, 통영 상륙작전 등 여러 전투에서 한국 해병대가 승리하도록 미군의 지원을 이끌었다. 특히 1950년 12월 중공군 포위 공세로 길이 막혀 흥남부두에 모인 피난민을 군수송선으로 철수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현봉학 동문은 휴전 후 미국 컬럼비아의대와 토마스제퍼슨의대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 서재필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또, 중국 연변대 초빙교수로 있으며 윤동주 시인 묘소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 방치된 묘소를 정비했다.
국가보훈처는 2014년 12월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으며, 해병대는 2002년 명예 해병으로 위촉했다. 모교는 2018년 연세 정신을 빛낸 인물로 선정했다.

 

영원한 국군 조창호 
교육학과 1학년이던 조창호 동문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위로 임관했다. 1951년 8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으며, 6월 북한군에 인계되었다.
북한의 전향 회유를 끝내 거부해 노동교화수용소에서 12년 6개월간 갇혀 지냈고, 다시 13년간 구리광산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1994년 10월 기적적으로 뗏목으로 압록강을 건너 탈출에 성공한 조창호 동문은 국군포로로서는 최초로 납북 45년 만에 돌아왔다.
조창호 동문은 1994년 중위로 진급했으며, 정부로부터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았다. 모교에서는 1995년 2월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조창호 동문은 2006년 타계했으며, 서울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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