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총동문회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헌신해 ‘상계동 슈바이처’라 불리던 김경희(의학 40입) 전 은명내과 원장이 지난 10월 2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경희 동문은 세브란스의전 2학년이던 1941년부터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당시 동대문구 답십리 조선보육원 어린이들에게 무료 진료를 한 것이 계기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역에서 중국 만주나 일본에서 돌아온 교포들을 치료했고, 1973년부터 답십리와 청계천, 망원동, 한강 뚝방의 판자촌 등을 돌며 무료 진료를 이어갔다.

상계동에서 1천 원 진료 시작
김경희 동문이 상계동에 은명내과를 개원하고 무료진료를 시작한 것은 1984년이었다. 1980년대 서울 각지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상계동에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무료진료임에도 불구하고 은명내과를 찾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존심 때문에 무료진료를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김경희 동문은 이들의 자존심까지 살려줄 방법을 찾다가 바로 ‘1천 원 진료’를 생각했다. 모든 환자의 진료비를 1천 원만 받으며 김경희 동문은 ‘상계동 슈바이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시작한 1989년까지 김경희 동문은 1천 원만 받았다. 당시 택시 기본요금이 8백 원이었다. 1996년 <연세동문회보> 인터뷰에서 김경희 동문은 “의사가 봉사할 수 있는 길은 진료이며,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료 진료하는 것은 의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김경희 원장은 2004년 노환으로 은명내과의 문을 닫기까지 독거노인을 찾아 무료 진료를 하는 등 20년 동안 가난한 이웃을 지켜왔다.

장학회, 심장수술후원회, 장애인심부름센터, 무료 독서실 등 운영
김경희 동문의 이웃 사랑은 의술에서 끝나지 않았다. 1985년 은명장학회를 설립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1986년 은명심장수술후원회를 결성해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을 치료했다. “판자촌을 돌며 진료하다 보니 등록금이 없어서 고민하는 부모와 울고 있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더라구요. 조금씩 도와주다보니 장학회를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장애인을 위한 무료 심부름센터인 ‘은명봉사의 전화’, 가난한 자녀들을 위한 ‘은명 무료 독서실’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를 이어갔다. 2000년에는 영세민촌인 중계본동 104번지와 상계1동 노원마을의 1백여 가구를 ‘은명마을’이란 이름으로 모으고 이들의 건강과 살림살이, 경조사 등을 챙겼다. 이러한 공로로 김경희 동문은 대통령 선행시민상, 서울시민대상, 아산사회복지대상, 보령의료봉사상, 인제인성대상 등을 받았고, 모교에서 연세의학대상 봉사상을, 1996년에는 총동문회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모교 사랑으로 전 재산 기부
섬김의 리더십으로 모교의 이름을 빛내온 김경희 동문은 1996년 평생 모은 전 재산인 토지(당시 감정가 53억)를 연세의료원에 기부했다. 이때 김경희 동문은 “1천 원 받고 진료를 한 것은 어떤 재산도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으며, 잠시 관리했던 재산을 이제 같은 마음으로 사회에 돌려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모교는 세브란스병원에 ‘은명대강당’을 마련하고 김경희 동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평생 이웃 사랑을 실천한 김경희 동문은 올해 1백세의 삶을 마감하며 마지막까지 이웃에 대한 섬김의 마음을 남겼다. 유족들은 평소 “내가 죽으면 모두가 마음의 부담 없이 올 수 있게 하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을 받지 않았다. 비록 육신은 영면했지만 김경희 동문은 하늘나라에서도 환한 웃음을 머금고 이웃을 돌보고 있을 것 같다.

박원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