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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연세는 연세인의 연세이고, 이 나라의 연세이며, 세계의 연세가 되어야 합니다!
등록일: 2020-04-28  |  조회수: 230

올해 팔순을 맞이한 김우식(화공 57입) 전 모교 총장에게 최근 새로운 이력이 추가되었다. 그동안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으로 우리나라 기술 자립에 힘써온 한국과학기술대학교(아래 카이스트)의 이사장이 된 것이다.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우식 전 총장은 “고목나무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며 웃었다. “제 소식을 듣고 삶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며 아는 분이 해주신 말입니다. 비록 무릎이 아프지만 일어나서 친구들과 후배들을 만나 점심을 사주고 격려해야겠다고 하시더군요.”

건강해서 일할 수 있다면 일을 해야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김우식 전 총장은 “건강해서 일할 수 있다면 일해야 한다”며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학창시절 경험이 오롯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시골 고등학교에서 혼자 연세에 입학했기에 쉽지 않은 1학년을 보내고 휴학계를 내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꿔 학교생활에 집중했고 그것이 지금의 위치에 오른 시작이었다. “어릴 때 몸이 약해서 약학을 공부하려 했는데 외삼촌의 권유로 화학공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연세 교정에 들어섰지만 시골에서 혼자 입학했기에 처음에는 친구도 없고 화학, 물리, 수학 등을 공부하고 숙제하느라 절절매며 1년을 보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는 한 학기 휴학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방학을 마치고 휴학계를 내려고 백양로를 걸어오던 김우식 총장은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휴학계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휴학하기 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기차역까지 배웅 나온 부모님은 몸조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나중에 휴학한 것을 아시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걱정되었고, 한 학기 휴학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람 있게 2학년을 보낼까 고민하는데 우연히 연세춘추 기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연세춘추의 문을 두드렸고, 실험 때문에 바빠서 안된다는 것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며 들어갔습니다. 정말 열심히 활동했고, 최현배, 김윤경, 이길상, 심윤댁 교수님 등 쟁쟁한 분들을 뵐 수 있었기에 기뻤습니다.”

연세춘추 기자, 주간, 편집인, 발행인

휴학계를 내려다 연세춘추 신청서를 내며 터닝포인트를 마련한 김우식 총장은 3학년 때 학회장이 되었고, 4․19혁명에 참여하는 등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됐다. 특히, 연세춘추와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김우식 총장에게 특이한 경력을 선물한다. “전임 교수가 되었는데 안세희 총장님께서 연세춘추 주간을 맡아달라고 하셨습니다. 문과대학과 사회과학대학에 쟁쟁한 분들이 계셨기에 사양하며 잘 말씀드렸지만, 결국 주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보부, 보안사, 경찰 등에서 한참 간섭할 때였는데 아무 사고가 없으니까 편집인으로 발령을 내셨습니다. 나중에 총장까지 되어 발행인이 되었으니, 연세춘추 출신으로 주간과 편집인, 발행인까지 맡은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도 크던 작던 모든 일에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이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다는 김우식 총장은 시대가 변하며 원하는 인재상이 바뀌더라도 ‘진인사대천명’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거듭 강조했다. 1968년부터 모교 전임 교수가 되면서 줄곧 후학양성에 최선을 다해온 김우식 총장은 지금도 그때 만들었던 교안을 가지고 있다. “졸업 후 잠깐 회사 생활을 했는데, 홍윤명 교무처장님께서 교수가 부족하다며 강의를 맡기셨습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며 밤새 코피를 흘리며 만든 교안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하도 답답해서 실험실 정리를 도맡아 하는 등 정말 별짓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연세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연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

공학도 출신의 유일한 모교 총장인 김우식 총장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앞장섰다. 앞으로 이공계가 더 발전해 걸출한 인재가 배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미국도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할 정도로 크게 위상이 올라갔습니다. 모교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훌륭한 교수님들도 계시고 인재들도 많으니 힘을 집약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획기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것을 개발한다면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연세는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앞서갈 수 없다면 우선 집중하고 그렇게 발전하면 다른 분야도 따라서 성장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동수 법인이사장도 같은 화공과 출신이기에 양교의 교류가 확대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김우식 총장은 잘하는 대학과 학과는 많은 협력을 이루고 있다며 양교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며 세계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협력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 모교 총장시절 주장했던 기여우대제에 대해서도 변함없다고 말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공공연하게 기여우대제도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며 공부하게 하고 시설을 넓히는 등 정확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연세인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연세는 연세인의 연세이고, 이 나라의 연세이며, 세계의 연세가 되어야 합니다. 연세는 연세인들이 당연히 사랑하는 모교이듯,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연세인들은 진리와 자유의 틀 안에서 교육받았기에 이 나라의 훌륭한 인재이며,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세계의 명문 대학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세로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도 필요합니다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세의 발전을 강조하는 김우식 총장은 언제나처럼 인터뷰 내내 활력이 넘쳤다. 이런 모습은 긍정적인 삶의 태도 때문이라 생각됐다. “자녀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베푼 것은 잊어버리고, 받은 것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어떻게 해줬는데 네가 그럴 수 있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서운한 생각을 갖다보면 마음만 더 힘들어집니다. 도움 받은 것만 기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처럼 큰 자산은 없습니다. 간혹 몸이 고될 수 있지만 내 형편이 된다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우리를 하나님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마음먹기에 따라 성불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는 정말 귀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도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보고 젊은이처럼 혈기 있게 산다고 하는데 지금도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재 양성의 사명감으로 봉사

팔순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우식 총장은 인재 양성의 사명감으로 카이스트 이사장을 맡았다. “카이스트라는 교육기관은 키스트(한국과학기술연구원)로부터 연유되었는데, 보릿고개가 있던 1960년대 배고픈 시절에 어떻게 외국에 연구소를 지어달라고 했는지 놀랄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이 시작되고 산업화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뒷받침한 것은 인재 양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우식 전 총장의 노력이 마중물이 되어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인재 배출을 통해 더욱 발전하길 기대한다.
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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