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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세상을 바꾸는 연세인들 ③ - 구본창 사진가
등록일: 2020-04-28  |  조회수: 4,469

고희를 바라보는 사진가 구본창 동문은 한국 현대사진 대표 작가이다. 경영학과 71학번으로, 사진작가로서 2004년 ‘자랑스런 연세 경영인상’을 받았다. 동아리는 화우회(미술반)를 했다. 경영학과 동기로 연상극우회(상대 연극반)를 했던 배창호 영화감독을 위해 연극 포스터를 그려주고 초대장도 만들어줬다. 그 시절엔 그러나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독일 유학파인 그는 유학 시절 초 그냥 비주얼 아트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때 들은 사진 수업 시간에 교수에게서 칭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친해진 독일 친구가 사진을 잘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사진을 전공했다. 지금도 교류하는 독일 친구는 정작 일찍 결혼해 호구지책으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됐다. 구 동문은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는 건 왕성한 호기심 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들어 두 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 중 한 전시회는 뉴욕서 했다. 5월엔 시드니에서 전시회를 연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은 물론이고 평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관심과 호기심이, 기복은 있었지만 꾸준히 작업을 하게 만듭니다.” 핸드폰이 좋아져 조명이 없는 어두운 곳에선 핸드폰 사진이 더 잘 나오는 시대다. 특별한 장소, 특수한 상황에선 누구나 폰카로도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을 남기려면 삶에 대한 생각이 웅숭깊어야 한다. - 영감의 원천이 뭡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렇듯이, 저도 마치 컴퓨터의 폴더처럼 다양한 테마의 수십 가지 박스를 비장하고 있어요. 그 중 한 개를 열어 집중적으로 매달리다 보면 하나의 작품이 나오죠. 작업을 하지 않을 땐 재미있는 사진을 수집하고 관심 있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요. 다큐멘터리, 세계의 기행 프로그램, 디스커버리 채널도 많이 봐요. 또 길에서 수시로 폰카로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영감의 원천이죠.” 그는 만년 서른여덟이라고 착각하고 산다고 말했다. 서른여덟은 그가 막 작가로 발돋움해 서울 청담동에서 처음으로 큰 전시회를 열었을 때 나이다. 그때의 초심을 지금도 유지한다. “항상 새롭게 시작한다는 자세로 일합니다. 상업적인 일을 맡아도 내 작업 하듯 이 일을 어떻게 해야 고객이 만족해 할까 고심을 하죠.” - 대학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재미없는 범생이였습니다. 친구들과 학교 앞 음악다방에서 음악이나 듣는 정도였죠. 그땐 데모로 인해 휴교를 많이 했어요. 일자로 난 백양로, 고색창연한 본관, 채플이 추억으로 남아 있고, 자연과 벗할 수 있는 노천극장을 좋아했어요. 말씀을 재밌게 하셨던 경영학과 이기을 교수님도 생각납니다.” - 연세 동산에서 뭘 배웠다고 생각합니까? “수용성과 열린 자세, 리버럴한 태도입니다. 연대생은 겉멋이 들긴 했지만 대체로 세련됐었죠.” 구 동문은 고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의 상대 후배이다. 대학 졸업 후 대우그룹의 모태 격인 대우실업에 들어갔지만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회사로 옮겼다. 독일 주재원으로 나간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함부르크조형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여기서 사진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로 떠난 건 학비가 거의 안 들었고 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함부르크에 출장 온 선배가 “인생에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고 격려한 것도 그가 뒤늦게 사진을 공부하는 데 힘이 됐다. 유학 후 돌아와 2~3년 대학 시간강사를 하며 버틸 땐 경제적으로 궁핍해 독일로 돌아갈 생각도 했었다. 독일 유학파인 그는 당시 국내 사진계에선 비주류였고 인맥도 없었다. 고교 졸업 당시 그의 미대 진학에 반대했던 아버지는 그 시절 돈 몇 만 원 꾸러 가면 “그러게,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왜 사진 쟁이가 되었느냐”고 타박을 했다고 한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는 경영학도 출신답게 경제 원칙에 충실했다. 단적으로 사진 장비에 대한 투자는 최소화하고 최대의 투자 효과를 노렸다. 과욕을 부리지 않았고 낭비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자기 건물을 지었다. 그는 또 예술을 하지만 신용을 중시하고 약속도 잘 지켰다. 송상(개성상인)으로 유명한 개성 출신이었던 부모들이 어려서부터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라고 훈계한 덕이기도 하다. 유학파 사진가가 드물던 시절 그는 사진학과에 대한 세간의 평판을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고 한다. 구본창 같은 명문대 출신도 가는 학과란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생긴 것이다. 그의 작품을 관류하는 키워드는 한국적 정서, 시간의 궤적, 그가 발견한 피사체의 감춰진 매력 같은 것들이다. 그는 ‘백자’ 연작과 ‘비누’ 연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문양도 빛깔도 빼어난 청자에 너나없이 주목하던 시절 그는 박물관을 순회하며 수더분한 백자를 증명사진 찍듯 찍었다. 백자는 본래 다소곳하고 완벽한 대칭도 아니다. 박물관 카탈로그 속 백자와 달리 그의 백자는 초상화를 연상시킨다. 포커스가 나가게 찍어 뽀시시 하다. 비누 연작은 조석으로 쓰다 보니 닳고 닳아 자투리가 된 비누에 대한 애틋함을 담았다. 그는 일상에 남은 세월의 흔적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 동문은 인생 2막에 취미로 사진에 입문한 사람들에게 몰려다니지 말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여행은 함께 하더라도 촬영은 따로 하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람과 찍으면 집중이 안 돼요. 출사 마치고 어울려 한 잔 하는 건 좋지만 작업은 나 홀로 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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