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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미디어에 비친 교정(4) - <겨울 나그네>
등록일: 2019-01-04  |  조회수: 8,107

<겨울 나그네>, 그리운 시간의 궤적들을 만나다

민우가 자전거를 타고 옵니다. 커다란 첼로를 들고 언덕을 오르는 다혜를 그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다혜의 품에 안겨있던 악보들은 낙엽 위로 산산이 흩어지고 민우는 길옆으로 쓰러집니다(아래 사진). 서둘러 일어나 악보를 챙겨주는 민우에게 수줍은 목소리로 고맙다 인사를 남기고 다혜는 가던 길을 갑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민우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영화 <겨울 나그네> 하면 떠오르는 명장면이죠. 1986년 4월 개봉작이니 벌써 32년 전입니다. 의대생 민우(강석우)와 음대생 다혜(이미숙)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최인호(영문 64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고래 사냥> 등으로 청년문화의 기수라 불리웠던 그는 1983년 동아일보에 <겨울 나그네>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뮤지컬로 수없이 다시 만들어진 이 슬픈 이야기는 문과대 앞에서 시작됩니다. 건물명으로 한다면 외솔관과 교육과학관 앞이죠.
민우는 상경대 건물이었던 백양관 쪽에서 올라옵니다. 화면이 바뀌고 교육과학관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며 다혜와 부딪힙니다. 넘어지는 민우 뒤로 용재관과 아펜젤러관이 보이고, 상황을 수습하는 두 사람 뒤로 한경관과 스팀슨관도 보입니다. 그리운 시간의 궤적들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순간이었지만,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들 때문에 그 궤적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1957년 학부모와 동문, 사회 유지들의 모금으로 지어진 용재관은 원래 도서관이었습니다. 백낙준 초대 총장의 호를 따 용재관이라 불린 이 건물은 1960년 졸업생 6백50명의 기금으로 돌계단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두 발로 딛고 더 높이 오르라는 선배들의 마음을 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민우가 넘어진 뒤로도 멀리 돌계단이 보이는데 이것은 1963, 65, 66년도 졸업생들이 기증한 것입니다. 6층 벽돌 건물이었던 용재관은 2015년 새롭게 지어진 경영관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역사 속으로 표표히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볼 수 없어 가슴 아픈 용재관 보다야 덜 하지만, 교육과학관 또한 아프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종합관이라 불리웠던 이 건물은 1972년에 준공되었습니다. 1996년 한총련 사건으로 불이 났을 땐 다시 볼 수 없을까봐 어지간히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되는 우연을 피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그 우연을 운명이라 부릅니다. 민우와 다혜도, 용재관과 교육과학관도 어쩌면 다 그들만의 운명이었겠지요. 수많은 순간 피하지 못한 우연을 원망했고, 운명이 가혹하다고 세상을 향해 볼멘소리를 질러댔지만, 지난 시간의 궤적들을 만나니 피하지 못했던 우연들마저 그리워집니다.

 공희정 (신방 83입)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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