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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흙과 불이 만들어 내는 궁극의 아름다움
등록일: 2019-07-08  |  조회수: 5,076

흑색은 무거움과 두려움, 암흑, 공포, 죽음 등을 상징하지만 권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 흑색의 매력에 빠져 평생 오로지 검은 도자기인 ‘흑자’만 빚고 있는 도예가 김시영 동문(금속 77입)이 지난달 개인전을 열었다.
고려시대 이후 한국에서 명맥이 끊긴 흑자를 우연히 만나 지금까지 올곧게 한 길을 걷고 있는 김시영 동문을 강원도 홍천에 있는 ‘노고갤러리’에서 만났다.
국내 유일한 흑자 도예가 김시영 동문은 흑색에는 모든 색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검정색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음색이라고 하는데 제가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검정색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색이 다 들어있습니다.”
김시영 동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천3백도가 넘는 가마 속에서 철분이 많이 들어 있는 유약이 만들어낸 흑자는 단순히 검정색이 아니다. 다양한 문양과 함께 붉은색, 푸른색, 금색, 은색 등 다양한 빛깔을 담고 있다. 흙과 불의 온도에 따라 빛깔과 문양이 천차만별이다.
“청자와 백자는 재료를 조금씩 바꾸거나 불을 아무리 바꿔도 전혀 다른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흑자는 불의 온도를 얼마나 유지하고 변화를 주는 것에 따라, 맑은 불과 탁한 불에 따라 다양한 색이 나옵니다.”
김시영 동문이 흑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모교 산악부였던 김 동문은 태백산맥 종주를 하다가 화전민촌에서 검은 파편을 발견하고 그 검은색 매력에 빠졌다.
“처음에는 흙과 유약의 성분을 분석하는 등 과학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서예가이셨는데,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흑자가 있었지만 대중화된 중국과 일본과 달리 한국은 흑자를 쓰지 않고 있으니 누군가는 재연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예술인의 피가 흐르는 것인지 김시영 동문의 두 딸도 미대를 졸업한 후 아버지를 따라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명맥이 끊겨진 흑자를 재현하기 위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원하는 색이 나오는 흙을 찾아 수없이 산을 올랐다. 지금도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산에 오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우직하게 산을 오르는 산악부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게 내 길이려니’ 생각하며, 호기심 때문에 시작해서 우물 속에서 이것만 계속했습니다. 똑똑하게 주위를 기웃거리고 그랬다면 지금까지 못 왔을 것입니다.”
김시영 동문에게 모교 산악부는 특별하다. 올곧게 한 길을 걸어온 힘이 되어준 것은 물론이고 몇 해 전 타계한 아내 홍옥주 동문(간호 78입)을 만난 것도 산악부였다. 뿐만 아니라 유중희(지질 76입)·박내혁(신방 77입) 동문과 함께 한 1983년 알프스 드류서벽 원정에서 조난을 당했지만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자일로 생명을 주고받은 산악부 동문들과는 지금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공부하다가 쉬는 시간이면 학교 건물을 맨손으로 올라갔습니다. 학창시절 만들어진 중앙도서관도 올라갔었죠. 드류서벽은 바위길이만 1천2백m로 인수봉의 10배입니다. 박내혁 동문이 잡고 오르던 바위가 떨어지면서 조난을 당했는데, 2박3일간 절벽에 매달려 있다가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김시영 동문은 원하는 색이 나오는 흙을 찾지 못해 고생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원하는 색이 나오는 흙을 찾지 못해 6개월 넘게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1998년 즈음에는 밤에 자다가 일어나 무엇인가에 홀리듯 집에서 30여 분 걸리는 곳으로 가서 주차하고 한 시간 정도 능선을 올라갔더니 아주 새까만 흙이 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흙을 찾기도 했습니다.”
김시영 동문은 몇 해 전부터 두 딸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도자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동안 즐겨하던 술도 끊고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산에 오를 때 바위와 제가 한 몸이 되어야 오를 수 있습니다. 이제 맑은 정신으로 흙에 취하고, 자연에 취할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람의 머릿속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전통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고, 조금 변형되거나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시영 동문의 작품은 일본 장관, 스페인 수상, 태국 총리 등 여러 해외 인사에게 국빈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으며, 인공적인 재료 없이 오직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매력에 외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달에는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의 자문위원이 전시회를 찾아 작품 소장을 논의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런던에서 개인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흑자의 정수를 여러 좋은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다면 연세인의 한 사람으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대가의 반열에 오른 김시영 동문은 이제 그 보폭을 더욱 넓히며 우리의 아름다움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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