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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형도 시인을 그리며
등록일: 2019-04-09  |  조회수: 5,192

바람은 그대 쪽으로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 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의 잠 속에서 끼어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 생의 벽지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등피를 다 닦아내는 박명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아직도 바람은 그대 쪽으로

추억은 낡은 레코드와 같다. 재킷의 모서리는 너덜거리고 색채는 세월의 폭격으로 빛을 잃었다. 알맹이에는 여기저기 흠집이 생겨 바늘을 올린다면 한 바퀴 돌 때마다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한때 그 추억은 불에 닿은 살갗만큼 아팠다. 한낮에도 한밤에도 레코드는 저 홀로 빙글빙글 돌아갔고, 그때마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가 없는 세계를 응시했다. 이럴 수는 없고 이래서는 안 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붉게 부풀어 오른 살갗을 찔렀고, 그 통증은 슬픔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절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럴 리 없다고 의심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건 시간뿐이라고 서로 위로하는 사이, 상처에 새 살이 돋고 새 살에 주름이 잡혔다. 낡은 레코드 같은 추억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시절을 재생시키는 건 이제 일 년에 한 번, 그가 떠난 삼월 초입이다.
- 내일, 형도한테 갈래?
기형도의 친구이자 소설가인 S선배가 금요일 오후에 문자를 보냈다.
- 다음주에 형도 오빠한테 가지 않으실래요?
하고 내가 문자를 보낸 것이 그 며칠 전이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묘지’라거나 ‘무덤’이라는 말은 쓴 적이 없구나, 싶었다. 그와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형도 오빠한테 다녀왔어’라거나 ‘기형도 선배에게 가려고요’라고 말했다. 가혹할 만큼 빨랐던 이별에 대한, 그 부당함에 대한 자그마한 항의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차가운 땅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어쩌면 영원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음날은 흐렸다. 예전 같으면 운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었겠으나 그 흐림의 원인이 미세먼지였기 때문에 차창 밖의 풍경은 조금도 애틋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물론 나도 포함하여) 그동안 지구를 마구 굴려먹은 것 같아 어쩐지 죄송한 마음도 일었다. S선배와 나, 그리고 그의 신문사 후배였던(어이없게도 몇 년 후의 정년퇴직을 앞둔) P선배, 세 명의 대화에도 날씨 이야기가 자주 끼어들었다.
- 해가 뿌연 가로등 같네요.
내 말에,
- 형도 선배 시 중에 그런 게 있었는데. 태양이 마분지 너머에서 비치는…
P선배가 대답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안개>에 나오는 태양의 이미지가 그랬다.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그날 오전, 기형도 문학관 주최로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꽃은 사지 않기로 했다. 안성추모공원에 있는 작은 편의점에서 나는 콜라를 골랐다. 생전의 그는 술자리에서 술 대신 항상 콜라를 마셨으니까. S선배는 청하 한 병을 들고 말했다.
- 형도랑 J네 집에 놀러갈 때, 나는 빨리 취해야 하니까 소주를 샀는데, 형도는 청하를 샀어. 소주보다 약하니까.
친구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의, 그 나름대로의 타협인 셈이다. 판매대에 놓인 과자들을 둘러보던 P선배는 맛동산과 새우깡을 집었다.
- 이건 기억하겠지. 다른 과자는  모를 거야.
그렇게 우리는 조촐한 상을 차렸다. 절을 올리진 않았다. 친구에게, 선배에게 절을 하는 건 좀 이상하니까. 그 대신 그의 앞에 서서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묵념은 너무 무겁고 기도는 너무 경건하니, 그저 가만히 말을 건네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곳은 평안한지 가끔 이곳 생각도 하는지 묻고, 거기와 여기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가늠해보기 위해. 찬란할 것도 웅장할 것도 없는 목숨을 여태 이어온 남은 자에게는 그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P선배가 담배에 불을 붙여 놓아주고, S선배가 콜라와 청하를 부어주는 것으로 짧은 만남은 끝났다. 이제 그만 가겠다거나, 잘 지내라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이별을 되풀이하다보면, 이별의 의식은 무의미해진다.
- 형도 나이의 두 배가 되었구나.
돌아오는 길에 S선배가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을 쉬거나 웃을 수밖에 없다.
- 그 나이 세 배가 되면, 우리도 못 오겠지?
혼잣말 같은 그의 덧붙임에 허탈한 웃음이 그치고, 그날의 날씨처럼 흐린, 혹은 그의 ‘안개’처럼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날 저녁엔 콩나물국밥을 놓고 막걸리를 마셨다. 거리는 재빨리 어두워졌고, 그에 대한 기억들이 더듬더듬 흘러나왔다. 발목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다 어느 순간 심장을 잠기게 하는, 그래서 문장 하나 끝맺지 못하게 하는 기억들도 있다.
그가 데려가주었던 세종문화회관의 음악회(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한밤중 기숙사로 걸려온 전화(집에 처음으로 전화를 설치한 기념이라고 그가 말했다), 비오는 날 우연히 만나면 어디어디로 가자던 약속(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 생일날 그가 선물해준 커다란 곰인형과 송아지인형(흔들면 음메음메 소리를 냈다), 여름방학에 받았던 세 통의 엽서(바탕에는 초록색 색연필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길 위에서 들었던 그의 시들(그는 자신의 시를 거의 외우고 있었다), 백양로를 내려오며 그가 불렀던 노래(신문사 시험을 보고 발표를 보러 가던 그해 가을에, 그는 ‘여름은 가고 적막한 이 숲속에’로 시작하는 ‘연세문학회가’를 불렀다), 그를 기다리던 카페 <장밋빛 인생>(나는 ‘카페 장밋빛 인생’이라는 시를 써서 그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역시 ‘장밋빛 인생’이란 제목의 시를 쓰고 있었다), S선배의 약혼식이 열린 부산에서 그와 함께 불렀던 노래(‘사랑은 한순간의 꿈이라고’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휴일이면 우르르 몰려 갔던 S선배의 신혼집(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곳도 그곳이었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그는 우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를 보낸 지 삼십 년, 이제는 한순간의 꿈이 되어버린 추억들이 여태 어리석게도 눈부시어, 나는 다시 길을 잃는다. 상처가 아물어도 슬픔은 존재하고, 이십구 년을 살다 삼십 년을 아득하게 죽어 있어도 그는 부재하지 않는다. 헤어진 날이 멀어질수록 다시 만날 날은 가까워지리라는 캄캄한 믿음 하나에 의지하여, 아직도 ‘바람은 그대 쪽으로’ 불고 있다.
<덧붙임>
노래를 청하듯 나는 종종 그에게 낭송을 청했고, 즐겨 듣던 시는 <바람은 그대 쪽으로>였다. “이 다음에 시집을 내면, ‘H에게’라고 부제를 붙여줄까?” 장난스럽게 그가 말했지만, 시집은 그가 떠난 후 나왔다. 그의 말이 농담과 진심 사이 어딘가에 있었을지도 모르니, 그 부제는 내가 가지기로 했다. 그 짧은 삶에 내가 족히 머물렀으니, 남몰래 그 정도는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글·황경신(영문 84입) 작가
황경신 동문은  <그림 같은 세상>, <모두에게 해피엔딩>, <초콜릿 우체국>, <생각이 나서>, <위로의 레시피>, <눈을 감으면>, <밤 열한 시>,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생각의 공을 굴려서 글쓰기 근육을 키우자>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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