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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인물로 보는 연세 150년⑨ - 김동길 명예 교수
등록일: 2022-11-22  |  조회수: 668

지난 10월 4일 향년 94세로 영면한 김동길 명예 교수는 역사학자이자 문필가·강연가였다. 우리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썼고 박정희 정부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지식인으로서 우리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1991년 대학을 떠난 후엔 현실정치에 참여해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은퇴 후 만년에는 보수 논객이자 유튜버로 활동했다. 지난해까지 운영한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는 구독자가 41만여 명에 이른다. ‘김동길TV’를 시작했을 때 91세였고 국내 최고령 유튜버였다.

김 교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나비 넥타이와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1980년대엔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정치권을 꼬집는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나비 넥타이는 미국 유학 시절 학칙이 엄한 학교라 학생식당에서도 항상 넥타이를 매야 했기에 애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비 넥타이는 간편해 쉽게 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학교를 떠난 후로는 교수 시절에 한 민주화운동과는 거리를 뒀고, 정치적 스탠스가 차츰 보수로 기울었다. 사회적으로는 보수 원로로 통했다.

김 교수는 민주화운동가로서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학생운동권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항소를 포기한 그는 1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훗날 안양교도소 시절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증오심을 품었다. 그런데 교도소로 넘어가기 전 서대문구치소 시절 어느 날 새벽에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 ‘사랑 사랑 사랑’ 이런 말이 귀에 들려왔다. 그러자 사나운 폭풍이 일던 마음이 평온해 지면서 ‘그래,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 시절엔 학생들과 함께 수감돼 ‘좌상’ 대접을 받았다. 겨울에도, 난로는 없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잤기에 얼마간은 온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김 교수는 박정희 구군부·전두환 신군부의 탄압으로 우리 학교에서 두 차례 해직을 당하기도 했다.

평안남도 맹산 태생인 그는 1946년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선 후 월남해 우리 학교의 전신인 연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졸업한 후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 에반스빌대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보스턴대로 옮겨 에이브러햄 링컨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우리 학교 사학과에 몸담았고, 교무처장·부총장을 지냈다. 서거할 때까지 우리 학교 명예 교수로 있었고 사단법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을 맡았다.

2017년 봄 구순의 나이에 우리 학교 재상봉 행사 특강을 맡은 그는 “미국에서도 두 대학에 다녔지만 연세를 졸업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세가 없었고, 그 시절 스승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날 특강에서 “한국이 세계 평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역설했다.
“세계 평화 기지를 한반도에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의 환경론자들은 한국의 DMZ에 세계평화를 위한 공원을 만들고, UN 본부를 이곳에 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생전에 그는 이철 당시 우리 학교 의료원장에게 원고지에 직접 쓴 유서를 보냈다. 이렇게 썼다(오른쪽 사진).

“내가 죽으면 장례식·추모식을 일체 생략하고 내 시신은 연세대 의료원에 기증하여 의과대학생들의 교육에 쓰여지기를 바라며, 누가 뭐래도 이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가 살던 집은, 마당에 지은 김옥길기념관까지 고인의 뜻에 따라 2020년 이미 이화여대에 기증됐다. 재산은 물론 시신까지 기증하고 떠난 것이다. 고 김옥길 여사는 그의 누나로 이화여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길은 우리 앞에 있다>, <링컨의 일생>, <한국청년에게 고함> 등 평생 100권이 넘는 책을 냈다. 거의 대부분 수필과 신문 칼럼을 엮은 산문집이고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였다. 문장이 뛰어났을뿐더러 술술 읽혀 인기가 높았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인 링컨의 일생을 요약한 <링컨의 일생>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홈페이지(Kimdonggill.com)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행보를 했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비판 정신은 녹슬지 않았다. 전문을 옮겨 싣는다.

“ ‘행복한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데, 그런 천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시인, 문인, 화가, 조각가가 다 그런 사람들인데 대개는 가난하다. 예술가가 돈이 많으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 선생이나 교회 목사나 절의 스님들은 비록 특출한 재능은 없어도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가난하지만 긍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천직’을 가진 이들을 존경하였다.

그러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그들도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고 자연히 존경하는 마음도 없어졌다. ‘성직’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돈이 예술가나 ‘성직자’를 타락시킬 수 있다.”

이필재 (신방 77입) - 한국잡지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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