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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세상을 바꾸는 연세인들 ⑯ -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2)
등록일: 2022-07-06  |  조회수: 1,028

저자 : 이필재(신방 77입) 한국잡지교육원 교수

“해외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에 대해 괜찮다, 그동안 잘해 왔다고 평가합니다. 동시에 지금부터 어려움이 많을 거라고 얘기해요.”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는 중앙은행 총재기구인 국제결제은행(BIS) 이사를 지냈다. 그 배경엔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깔려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가 이른바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십니까?
“현재로선 현실성이 없습니다. 달러 외엔 진정한 의미의 기축통화도 없어요.”
   그는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권이라는 식의 표현도 경계했다. 순위보다 스스로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한국 경제가 지금 기로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저출생·고령화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고 말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게 곧 우리가 살 길인데 이들을 끌어올리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관련 제도는 물론이고 노동 개혁 같은 건 우리의 사고와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죠.”
   그는 성장의 주체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저출생 대책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저출생 문제에 대처하려면 불가피하게 이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단 고급 기술을 익힌 전문 인력이라야 합니다. 이민을 허용한다고 해서 이들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에요. 국제학교 등 인프라와 생활환경이 받쳐주고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가 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단적으로 외국의 유명 대학교수를 우리 대학이 초빙을 못하는데 등록금이 묶여 있기 때문이죠.”

중앙은행은 권력기관은 아니지만 통화정책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위상이 독특합니다.
“중앙은행 존립의 기반은 국민의 신뢰입니다. 국민 신뢰를 잃으면 한은이 하는 통화정책은 무용지물이 돼요. 가령 환율이 오르면 시장에 개입해 행동으로 정책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말로 할 때가 더 많아요. 기자간담회에서 ‘엄중히 보고 있다’,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하면 기자들이 그 의미를 알아요. 한 마디로 통화정책은 시장과의 소통으로 하는 겁니다.”
   그는 사회생활도 신뢰가 생명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은행은 발권력이 있어 필요하면 돈도 찍어내는데요?
“한은의 가장 큰 무기죠. 아무 때나 무제한으로 돈을 찍을 수 있고, 실제로 지폐를 찍지 않더라도 은행 계좌에 돈을 넣어줌으로써 신용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정부는 단돈 1원의 재정에 대해서도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집행할 수 있지만 한은의 발권력 행사는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무서운 권한이죠. 그래서 이 권한 행사를 함부로 못하도록 엄격하게 제약을 합니다. 즉 자금을 빌려줄 땐 떼이지 않도록 반드시 안전자산인 국채를 담보로 잡고, 대출 기한은 1년 이내로 제한합니다. 나름의 안전장치죠. 한은의 발권력은 정부 재정에 동원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른바 재정의 화폐화는 개발도상국도 하지 않는 일이에요.”

뉴노멀 시대 중앙은행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코로나 이후 두 가지 흐름이 가속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친환경 경제체제의 구축이죠.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화두인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디지털화에 대응해 각국 중앙은행은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CBDC) 도입을 추진 내지는 연구 중입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은행이 중심인 금융 중개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겁니다. 기후 변화도 당면 과제인데, 친환경 경제로의 순조로운 이행 과정에서 중앙은행에 새 역할이 요구되고 있죠.”
   그는 최우선의 경제 정책은 일자리라고 잘라말했다.
   “개인으로서도 고용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고용은 기업이 창출합니 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한 기업가는 존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가 존중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그렇다고 근로자를 홀대해도 좋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에요. 한은도, 고용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만 금리를 결정할 때 고용을 감안합니다.”
   70학번인 그는 연세 동산 시절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데모를 했다. 그때 상경대의 한 교수가 “지금 대학생들이 할 일은 거리로 뛰쳐나가 데모를 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해 장차 우리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와 자유는 데모를 통해 쟁취하는 게 아니라 경제 발전으로 사회 의식이 성장할 때 주어지는 것이라는 게 발언의 취지였다. 이 발언으로 해당 교수는 어용교수로 몰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그 교수님 말씀이 결국 맞았습니다. 경제 발전 덕에 지금 우리나라의 자유는 어느 나라 못지않습니다.”
연임해 8년간 한은 총재로 재임한 후 지난 3월 말 퇴임한 그는 자서전조차 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자칫 재임 중 성과를 미화하거나 평생 몸담은 조직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안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관심을 끌기 마련인데, 공개될 경우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이 어려워질 수도 있을 거예요.”
   퇴임 3개월 전부터 뒷마무리를 했는데 반드시 해 놓고 갈 일은 챙겼고 상반기 인사를 최소화해 후임 총재가 나름대로 조직을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본래 고교 인맥이 강한 한은의 주류가 아니었다. 20여 년이 지나서야 고교 후배가 하나 들어왔다고 했다. 연고주의가 뿌리 깊은 조직은 아니지만, 때 되면 도움 주고 발탁도 해주는 선배들이 없었다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재벌 그룹에서 사장을 한 친구가 털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회사 생활이 가장 괴로웠을 때가 나이 오십에 임원이 됐을 때라고 하더군요. 중고생 자녀가 있고 사회적으로 안정돼 있어야 할 때 조직 안에서 치고 올라오는 걸출한 후배들 때문에 불안하더래요. 한은에서 43년 근무하는 동안 그런 갈등을 겪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비결이 뭔가요?
“겸양지덕이야말로 조직생활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너무 의식하는 게 어쩌면 저의 결점인지도 모르죠. 마지막 날까지 직원들한테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셨습니다. 전공과 취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학 전공과 취업의 상관관계는 앞으로는 그렇게 높지 않을 거예요. 뉴욕에서 업무차 만난 투자은행(IB) 사람들은 물리·화학·수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이 가장 많았습니다. KPMG 컨설팅 부문에 있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전공 불문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하더군요. 국내 대형 로펌 대표에게서는 채용때 꺼리는 사람이 학부마저 법학과 나온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공 공부뿐 아니라 대학 재학 중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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