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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만나고 싶었습니다 - 방열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등록일: 2022-06-20  |  조회수: 1,732

국가대표 농구선수에서 동문들의 영원한 ‘방감독’으로, 또 교수로서 농구의 학문적 성과를 이뤄낸 방열(정외 61입) 가천대학교 명예 교수.
‘인생이라는 코트 위에서’ 한국 농구의 선진화에 한 획을 그은 그의 인생 4쿼터를 따라가 본다.

 1Q.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농구 선수
경복고 재학시절, 고교 농구선수로 활약하면서도, 농구에 대한 열정만큼 학업에 대한 열망도 컸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에, 가뭄이나 홍수가 지고 나면 외교관들이 해외에 식량이나 의약품을 구걸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놓인 대한민국이 국제정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교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교 정외과에 진학했습니다.”
고교시절부터 뛰어났던 그는 입학 1년만에 국가대표 농구선수로 발탁되었다.
“오전에 태릉 선수단에서 훈련을 하더라도, 오후에는 반드시 캠퍼스에 돌아와 수업을 들었습니다. 또, 해외 전지훈련 중에도 레포트가 있으면 반드시 작성해서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한번은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을 이겨보자고 선수단 훈련을 몰아친 적이 있는데, 수업 때문에 오후 훈련을 자꾸 빠지니 당시 이효 대한체육협회장에게 불려가 면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농구선수 이전에 학생으로서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2Q. 선진농구의 선구자, 명감독 방열
방교수는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농구 지도자의 길로 인생 2쿼터를 맞이했다.
“졸업할 때가 되니까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부상도 잦았고, 해외 유학을 가고 싶어 일찍 선수생활을 접고 해외유학 장학생 선발시험을 봤습니다. 영어와 국사 두 과목을 봐야했는데, 국사 과목이 유예가 되어 1년 더 공부해야 했습니다.”
당장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길었다.
“당시 모교 농구부 코치였던 이경제 선생님으로부터 조흥은행 여자농구팀 창단에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결국 ‘농구가 나의 운명인가보다’ 생각하고 코치의 길을 택했습니다.”
1968년, 27살의 나이로 젊은 코치가 된 후에도 그의 학구열은 대단했다.
“비단 농구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인체학이나 심리학등 코칭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모두 탐독했습니다. 각 분야의 지식을 조합해서 팀에 최적화된 코칭법을 개발하고 또 적용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69년 가을, 창단 1년만에 조흥은행 여자농구팀이 당대 최강 상업은행을 꺾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코치부터 감독까지 승승장구한 그는 ‘연저지인’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장수가 병사를 위해 피고름을 빨아줄 정도의 인자함을 보였을 때 비로소 병사도 장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의 리더십은 9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빛을 발했다.
“당시 뉴델리 선수촌 식단이 좋지 못했습니다. 일본전 4강까지는 어렵사리 승리했지만, 가장 중요한 중국전 결승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준비한 고기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소고기를 구한다는 것은 감옥행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직접 암시장에 소고기를 구하러 갔습니다. 오토바이에 소고기를 싣자마자 선수촌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매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이것만이 선수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승날 아침, 고기가 듬뿍 들어간 설렁탕을 먹으며 필사즉생 결의를 다진 대한민국 대표팀은 결국 최강 중국을 꺾고 아시아를 재패할 수 있었다.

 3Q. 조교수부터 대학 총장까지
방교수는 어린 시절 꿈이었던 교육자의 길에 도전하며 인생의 3쿼터를 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이 축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크면 교장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농구계에 몸 담았을 때에도 항상 마음 한 켠에는 학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그것이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경원대학교 조교수로 시작해 교수, 대학원장, 학생처장부터 건동대 총장까지 18년간 교직에 몸담았습니다. 배고팠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어 학생들에게 읽을거리를 많이 제공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공서적뿐만 아니라 농구서적 등 많은 책을 집필했고 또 해외 유명 농구서적들도 번역했습니다.”
그는 배움을 통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진학문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했다.
“농구는 단연 미국이 선진국입니다. 코치 시절부터 종로 미군부대 뒷골목에 가서 농구 관련 영문 책자나 잡지들을 얻기 위해 부단히 돌아다녔습니다. 지금도 그때부터 모은 책자들이 서재에 한가득입니다.”
“배움이란 욕심을 부리면 안됩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때, 딱 하나의 새로운 배울점만 얻어낼 수 있어도 독서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것들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지식이 되고, 학문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조교수에서 교수, 교무처장 등을 역임한 그는 건동대학교 총장에 자원했다. 스포츠계 인사로서는 최초의 대학 총장이었다.
“당시 학교 상황이 많이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 학부모, 교수 등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리더십을 원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했습니다.”
4년간 총장으로서 주어진 일을 잘 매듭지은 그는 명예롭게 은퇴했다.

 4Q. 한국 농구의 세계적 위상을 위한 길
교직을 마친 방교수는 2013년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SNS와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등으로 스포츠에 대한 한국 팬들의 문화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세계대회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스포츠는 팬들의 사랑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당장 축구의 손흥민, 피겨의 김연아, 골프의 박인비 등 한국 스포츠를 상징하는 스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롤모델이 되고, 두터워진 팬층을 통해 시장을 형성해나가며 아마추어 풀도 커지는 선순환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자연히 프로 선수의 수준 또한 올라가게 됩니다.”
2020년, 8년간의 회장 임기를 마친 방교수는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중이다.

연장전. 스포츠도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대한체육회를 필두로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선수 병역면제나 연금, 지도자 해외연수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노력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폭력과 입학비리, 승부조작 등의 어두운 면도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한 시대여도 농구는 팀 스포츠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교수.
“팀워크는 곧 관계입니다. 선수들 중에서는 내가 골을 넣어야 한다는 스타병, 잘 나가는 선수에 대한 질투, 안될 것 같으면 미리 포기하는 포기병의 폐단들이 만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방교수은 이러한 부작용의 원인으로 스포츠계의 인문학 소양 부족을 꼽았다.
“일선 지도자들이 물론 과거보다는 나은 교육을 받았겠지만, 아직도 역사, 인격, 철학, 교육학 등 인문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국가대표 선수라면 왜 우리가 저 나라를 이겨야 하는 지 역사적 사명감이 있어야 진정으로 노력할 것이고, 세계에서 통하는 명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과 교육학 등 넓은 교양이 필요합니다.”
은퇴 후에도 지칠 줄 모르는 방교수는 현재 스포츠계 인문학 교육을 제도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며. 우리 모두 정의로운 연세 동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세 동문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대학에서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직 학교라는 상아탑에서만 누릴 수 있는 캠퍼스의 풍토가 있습니다. 바로 진리와 자유의 연세정신입니다.
“동문들 중에는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만, 수많은 동문들을 만나 오면서 자유와 진리에 비해 정의의 덕목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정치인, 기업인, 교육자, 스포츠맨 분야를 막론하고 정의감이 살아있을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삶을 돌이켜 보면 매사에 정의로울 수만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동문 모두가 정의로운 연세인으로서, 사회의 진정한 리더로서 미래를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동문들의 영원한 방감독, 방열 가천대학교 명예 교수.
인터뷰에서 못다한 그의 생생한 농구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자서전 <인생이라는 코트 위에서>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김 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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