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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세상을 바꾸는 연세인들 ⑭ - 김성수 성공회 우리마을 촌장(대주교) - 2
등록일: 2022-01-17  |  조회수: 13

고루 잘 살고 서로 박수 쳐주는 세상이 돼야죠

배재고 재학 시절 김성수 대주교는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아이스하키를 하다 폐결핵을 얻었다. 한국전쟁 전 일이다. 그 후로 10년 간 우리마을이 있는 고향 강화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그 새 친구들은 대학을 마친 후 사회에 진출했다.
의사는 폐결핵 3기라며 그가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결핵에 듣는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 한 병에 쌀 한 가마 값 하던 시절이었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때 그는 일부러 몸에 힘을 줬다. 그 바람에 주사바늘이 튀고는 했다.
“부모는 약값을 대느라 고생하는데 참 못난 짓을 한 거죠. 낮에는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고 밤이면 달 보며 누워 있었습니다. 약을 못 쓰면 그냥 누워 있는 게 폐결핵엔 최고의 약이라고 했거든요. 의사가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만 일어나라고 했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순 엉터리로 산 나를 하느님이 살렸고 교회 일을 하게 하셨죠. 나를 찍으셨기에 ‘고맙습니다’ 하고 따라간 것뿐입니다. 병이 나은 뒤 아픈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죠.”
그는 “하느님은 사람을 통해 일 하신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은혜로 자신이 살아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의사가 개입하게 하셨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회복될 확률이 굉장히 낮았지만 그는 깨끗이 병이 나았다. 폐결핵은 감염병이다. 회복된 후에도 그가 남의 아이를 안으면 아이 엄마가 빼앗아 데려갔다.
그는 당시 강화도 사람들은 운동이나 열심히 하고 공부도 못하던 자신이 신부가 되자 다들 놀랐다고 귀띔했다. 신부가 됐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였다. 어머니는 그가 주교가 된 후 떠나셨다.
“강화도는 성공회의 교세가 센 곳이죠. 엉터리 김성수가 신부가 되자 많이들 밀어줬어요.”

- 어쩌다 노인들이 대접 못 받는 세상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반성하고, 무엇보다 올발라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본받죠. 우리나라에 교회가 많지만 교회도 올발라야 해요. 교회도 사회 속의 교회에요. 사회의 변화에 교회가 보조를 맞춰야죠. 사회가 교회를 끌고 가려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가 사회를 끌고 가려드는 것도 잘못입니다.”

-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도 여전합니다.
“장애 학생이 다니는 특수학교 설립에 집값 떨어진다고 주민들이 반대하고,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반대 주민들에게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 그런 일이 우리 사회에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나라가 대체 어디로 가는 나라인가요? 교통사고 등으로 누구나 중도장애인이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아마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발달장애인보다 많을 거예요. 정치 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고, 교회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중재를 해야죠.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하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남을 존중해야 돼요.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면 됩니다.”
그는 교회의 대형화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커진 교회들이 방관하지 말고 우리 사회를 잘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 공부들은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실천을 해야죠. 공부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 우리마을을 거쳐간 발달장애인 중 누가 기억에 남습니까?
“스물넷 된 젊은 여성이 첫 봉급을 탄 후 엄마에게 빨간 내복을 사다드렸습니다. 동네에 소식이 퍼졌고, 집안은 울음바다가 됐죠. 또 해외여행을 하고 온 부부가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마을에서 자기 아이를 잘 맡아 줘 아무 걱정 없이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그 전엔 아이를 돌보느라 전혀 다니지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집에 혼자 둘 수 없는 발달장애인에게 당장 지역에 가서 살라는 건 꿈같은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우리마을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인 정년도 60세로 비장애인과 같아요. 이렇게 비장애인들이 이들 발달장애인과 피차 우리가 되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하느님이 가장 좋아하실 거예요.”
김 대주교는 젊은 날 욕쟁이 신부로 이름을 날렸다. 김근상 성공회 주교가 대학생 시절 김 대주교가 교장으로 있던 발달장애인 특수학교 성베드로학교에 자원봉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가 “가르쳐도 소용없는 아이들과 이런 전쟁을 하느니 똑똑한 신학생 하나를 키우는 게 사제가 할 일 아니냐”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 자식아, 너나 잘 살아. 정상적인 놈이 내 눈엔 장애인처럼 보여. 저 아이들 눈을 봐라. 저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살리는 거야. 인마, 어서 꺼져.”
김 주교의 회고담이다.

- 정년 퇴임 후 8년 간 성공회대 총장을 지내셨는데, 교육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젊은이들이 공부를 할 환경과 분위기를 기성세대가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도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써야죠. 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요. 공부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세대 갈등, 이념 및 진영 갈등 등 우리 사회에 갈등이 극심합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사회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정직하게 열심히 해 나가도록 전 사회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럼 사람들이 다들 웃으면서 살게 될 거에요.”

- 어떤 세상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고루 잘사는 세상이죠. 누구나 먹고살 걱정 없이 자식들 공부 시킬 수 있는 세상입니다. 또 잘하는 일엔 서로 박수를 쳐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개발로 한두 사람이 큰 부자가 되는 사회는 문제가 있어요. 어떻게 아파트를 지어 천 억씩 법니까?”

- 우리나라의 장래를 낙관하십니까?
“내가 평생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낙관할 수밖에 없어요. 어렸을 때 농촌에선 신발도 제대로 못 신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아프리카를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랬던 이 나라가 세계 10위의 무역 대국이 됐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 나간다면 앞으로도 낙관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세상보다, 나 자신을 변화시켰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로 압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 글귀는 영국에 있을 때 어느 주교님의 묘에서 본 겁니다. 저마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려 노력한다면 세상이 제대로 변하겠죠.”

- 살아오시면서 후회 되는 건 뭔가요?
“뭐, 부모님에게 불효한 것이죠.” 그는 요즘은 늦잠을 자는 게 일이 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주교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 새벽 미사를 어떻게 드렸는지 모르겠어요.” 김 대주교는 인터뷰를 마친 후 우리마을 내부를 구경시켜 줬다. 공교롭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2층에 올라갈 땐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 건강은 좋아 보이십니다. “전립선, 심장 등 몇 곳이 안 좋아 약을 많이 먹습니다.”

- 묘비명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그런 것에 흥미를 못 느끼고, 저의 일대기를 쓰겠다고 해 절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데도 누가 하겠다고 해 속이 상해요.”

- 만일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시고 싶습니까?
“공부를 한번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위대한 학자가 한번 돼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이필재 (신방 77입) 한국잡지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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