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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세상을 바꾸는 연세인들 ⑩ - 김형석 모교 명예 교수(2)
등록일: 2021-05-07  |  조회수: 443

건강을 지키려 되도록 많이 걷는다는 김형석 교수는 보행 중에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안세희 총장이 나더러 ‘학교 옆에 살면서 걸어 다니는 동안에 모든 생각을 다 하시나 보다’고 한 일이 있어요. 그랬기에 연세대를 배경으로 하는 글도 많이 썼어요.” 그는 캠퍼스 안 추억의 장소로 청송대(聽松臺)를 꼽았다. 청송대는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낸 이양하의 신록예찬)이 이 푸른 솔(靑松) 숲을 지날 때 귀기울여 ‘소나무 소리를 듣는’ 곳이다. 우리 학교는 지금 ‘청송대 푸른 숲 가꾸기’ 사업을 추진 중이다. 노후화한 시설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다. 동문들 상대로 모금도 한다. 김 교수는 미국 유수의 사립대학들은 국민의 큰 사랑을 받았고 역대 어느 정부 못지않게 그 나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같은 대학에서 미국의 힘이 나옵니다. 150년 전만 해도 미국이 독일, 프랑스, 영국을 못 따라갈 거라고 했지만 그 후 미국의 학회 세미나를 다녀간 유럽의 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유럽 국가들이 100년 노력해도 미국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유럽이 대학 경쟁에서 미국에 졌다는 거죠.”

-대학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는 겁니다. 끼리끼리 어울려 즐거운 동산으로 만들고 애교심으로 뭉치는 게 대학의 본질이 아니에요.”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우리 학교는 성찰할 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대 특수대학원 개강 특강을 가면 먼저 예배를 봅니다. 이러니 다른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은 연대에 안 와요. 이런 노력은 나중에 학기 중에 해도 됩니다. 대학다운 것이 아닌, 교회의 전통과 인습을 고집하면 특수대학원 지원자들이 줄어들 거예요.” 그가 과거 신임 교수 가운데 기독교인이 아닌 분과 총장실에 인사하러 갔을 때 직접 겪은 일을 들려 줬다. 총장이 우리 학교는 기독교 대학으로 교수는 기독교인이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퇴임할 때 그분이 ‘그때 총장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기독교인이 됐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교인 여부보다 교수로서의 인격이 중요해요.”

-인생 2막을 앞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고 싶습니까?
“서른까지는 교육을 받고, 정년까지 일 합니다. 그 후 아흔이 될 때까지 이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인생의 3단계죠. 사실 열매를 맺는 건 예순 이후예요.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직업의식, 일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야 해요. 더불어 살 때 행복하고, 봉사하는 삶이 남는 인생이에요. 이기주의자, 물질의 가치만 아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려서 건강이 안 좋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친구 의사에게 그를 데려갔다. 몸이 약해 중학교에 못 갈 거라고 그날 의사가 말했다. 김 교수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들려줬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인생은 길다. 평생 나와 나의 가정만 걱정하면 딱 거기까지 성장한다. 자기 직장을 걱정하면 직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서 살면 나라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 “민족·국가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을 잃지 않고 정년을 넘겨 죽을 때까지 일해요. 결국 공동체의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거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교수도 마찬가지예요. 학교보다 자기 생각을 많이 하는 교수는 학교가 잊고, 정년이 되면 사회적으로도 잊혀집니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면 학교와 더불어 남죠.” 김 교수는 백수(白壽)가 되던 해 <백년을 살아보니>란 책을 냈다. 백수란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만)을 뺀 만 99세를 가리킨다. 이 책에서 그는 백년을 살아보니 인생은 ‘운명’도, ‘허무’도 아니고 ‘섭리’더라고 털어놓았다. “자기답게 사는 게 소중하고 나는 나답게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더 높은 뜻이 있어 이렇게 살았구나, 나는 심부름한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섭리와 더불어 은총을 느꼈습니다.”

-100세 시대를 어떻게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돌이켜보면 90 고개가 힘들었어요. 친구들이 떠나 혼자 남고 보니 인생이 다 끝난 거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겨내나 하다가 남은 여생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으로 끝내야겠다고 결심했죠. 말하자면 일 욕심이랄까 사명감이 날 지탱한 셈이에요. 최선을 다해 그렇게 살다 보니 100세를 넘겼어요.” 그는 이 사회를 위해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늙은 나에게 요청하는 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교수님의 좌우명이 뭡니까?
“딱히 없습니다. 젊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장년기에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 후에는 희생정신이 필요하죠.”

-가장 큰 좌절 경험이 뭔가요?
“좌절보다 실수를 많이 했어요.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장했는지도 모르죠. 지금도 일기를 씁니다. 쓰면서 작년, 재작년 오늘의 일기를 봅니다. ‘그땐 내가 참 모자랐지, 지금이라면 안 그럴 텐데’ 해요.” 일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서른에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70년 넘겨 쓴 셈이다. 오래 쓰다 보니 없어진 일기장도 있다고 했다.  

-자녀들은 어떻게 교육하셨습니까?
“너희의 인생을 너희 생각대로 개척해 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앞서가지 않고 아이들을 앞장세웠죠.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자유를 줬어요. 부모들이,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진영 갈등, 세대 갈등 등 집단 갈등이 심각합니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동권 정치와 보수적 신앙을 넘어서야 합니다.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추구할 가치는 휴머니즘과 민주주의죠. 나무가 자라는 데 뿌리와 밑동의 역할도 있듯이 모든 세대가 다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자기 인생을 산 것으로 만족합니다. 자기 인생관 없이 살면 자칫 군중의 한 사람으로 남의 인생을 살 수도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교수님도 저조하십니까?
“나 역시 우울합니다. 그래도 방역 지침에 따라 나를 지키는 게 남을 지키는 것이자 사회를 지키는 길이죠. 교회가 대면 예배를 고집해 감염의 온상이 되는 건 사회에 역행하는 거예요. 공동체 정신을 발휘해 이 시련을 극복하면 우리 사회가 달라질 겁니다.”

-죽음을,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죽음은 준비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닥칩니다.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사랑이 있는 수고와 봉사를 하다 오래 앓지 않고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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