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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연세정신을 빛낸 인물’ 서산 정석해 선생
등록일: 2019-09-02  |  조회수: 814

서산 정석해 선생

한국의 1세대 서양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민주화운동가이다. 1917년 연희전문 수물과에 입학해 바로 문과로 전과한 정석해 선생은 1919년 연희전문 학생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서 학생 독립만세 시위를 주모했으며, 이후 중국으로 망명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20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 겸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뷔르츠부르크에 2년 유학하였고, 파리 대학으로 돌아와 앙리 들라크루아(심리학), 앙드레 랄랑드(철학), 브룅슈 비크(수리철학) 문하에서 학업을 마치고 1939년 귀국할 때까지 고학으로 철학 연구를 계속했다.
귀국 후 일제 감시로 고향에서 칩거하다가 1945년 해방 후 연희전문 교수로 취임했다. 연희대학교에서 교무처장, 문과대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4‧19혁명의 결정적 전기를 만든 4.25 교수단 시위를 주도했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학원 탄압의 역풍으로 1961년 강제 정년퇴직됐다. 이후 1981년까지 시간 강사로 모교 강단을 지켰으며, 1964년 대일굴욕외교에 반대하는 교수와 지식인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모교는 2016년부터 연세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의 정신을 계승한 인물을 ‘연세정신을 빛낸 인물’로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독립운동가이자 사회민주운동가이며, 서양철학을 직접 한국에 도입한 1세대 철학자인 서산 정석해 선생이 ‘연세정신을 빛낸 인물’로 선정됐다. 5월 11일 열린 기념행사에서 가족을 대표해 참석한 정세장 동문(신방 74입·사진 아래)을 만나 서산 정석해 선생님에 대해 들어봤다.
정세장 동문은 연세정신을 빛낸 인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번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큰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많은 일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져가는 인물이 다시 되살아났다는 것에 굉장히 통쾌했습니다. 가족으로 기뻤으며, 많은 헌신과 희생을 했음에도 평가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던 한 인물이 다시 되살아나는 과정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정세장 동문은 정석해 선생께서 ‘연세정신을 빛낸 인물’로 선정된 것에 대해 “남을 위해서 자기의 삶을 희생하고, 공익을 위해서 사사로움을 희생하는 그런 삶이 결국 후학들이나 후손들에 의해 추앙받고 존경받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서산 정석해 선생이 ‘연세정신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기까지 모교 철학과와 사학과 교수들이 나서서 큰 역할을 했다. 모교 철학연구소는 2005년 2학기부터 서양철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연세철학의 단단한 초석을 놓은 서산 정석해 선생의 뜻을 기리며 ‘서산철학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는데, 1백50회를 넘기며 다양한 주제로 개최되고 있다.
정세장 동문은 2013년 서산기념사업기금 1억 원을 모교에 전달했는데, 이를 통해 서산 선생에 대한 연구가 더 심도 있게 진행됐다.
“제 부친은 서산 형님을 아버지처럼 동경하고 위해 드리면서 그 삶에 대해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1945년부터 61년까지 연세에 계시면서 학생처장, 교무처장, 문과대학장을 역임하셨고, 1961년 강제 퇴직 당하신 후에는 1981년까지 시간강사로 생활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연세를 위해 일하셨는데도 시간강사로 대접받으시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심하다가 큰아버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철학과와 사학과 교수님들께서 서산 선생님의 행적에 대해 많이 발굴하셨고, 그분들이 추천해주셔서 이렇게 선정되었습니다. 특히 평전을 써주신 박상규 교수님과 김은중 박사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서산 같은 분이 다시 조명 받고 연세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말 통쾌합니다.”
정세장 동문은 정석해 선생에 대해 담담히 말을 이어갔지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석해 선생께서는 1981년 미국으로 가시면서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뤘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인데 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셨는데, 40년 만에 다시 연세정신을 빛낸 인물로 선정 받으셨으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정세장 동문은 정석해 선생께서 시간강사로 어려운 삶을 사셨지만 학자로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묵묵히 수행하셨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직접 모시고 다니기도 했던 정세장 동문은 정석해 선생의 강의 열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1979년 즈음 서산 선생님을 모시러 댁에 갔을 때 큰어머니께서 따라 나오시면서 새벽 4시까지 강의 준비하느라 잠도 안주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든의 나이에도 강의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다 쏟으시며 준비하셨습니다. 정부로부터 여러 제안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은 전혀 거들떠보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공부하고 후학을 키우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시던 정석해 선생은 1989년 잠깐 귀국하셨다. 그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50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석해 선생은 공부라고 대답하셨다.
“프랑스에 계시면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충분히 공부하지 못하셨고, 귀국하신 후에는 연세에서 행정 일에 매여 공부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셨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유럽의 순수 철학은 물론 미국과 영국의 실천 철학 등에 다 정통하셨다고 하는데, 정작 서산께서는 ‘당신이 알고 있는 지식은 철학의 해변에 한줌 모래만도 못하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책도 한 권밖에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모교 철학과 교수님들께 서산 선생의 철학 세계를 규명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정석해 선생께서는 또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로 ‘하나님의 소명’을 말하셨다. 정세장 동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이 시대에, 이 자리에 왜 있는지,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소명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서산 선생께서는 4‧19 교수 시위를 나가시면서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시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를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의로움에 서는 것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온갖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불의한 일에 분연히 행동하셨습니다.”
정세장 동문은 5월 11일 열린 기념식에서 서산 선생의 마지막 바람인 독립운동가 김원벽 동문의 동상 건립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4‧19 시위를 하고 돌아온 학생들에게 백낙준 총장께서는 ‘너희들을 보니 원벽의 혼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고 말하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김원벽 애국지사에 대해 연세가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기념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서산께서 1981년 미국을 가시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이 김원벽 동상을 세우지 못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항일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데 지금이라도 그분을 조명하고,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산 선생님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함께 등사한 세분 중 두 분은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을 발굴하고 기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조국과 연세 발전을 위해 애쓴 모교를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쓸쓸하게 이 땅을 떠나셨던 서산 정석해 선생은 연세의 이름을 드높인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우리의 여러 부족함 때문에 당연히 높임 받아야할 분들이 잊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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